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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선교이해 7장 방법적인 명령 요약

웅대한돌산 2012. 9. 25. 10:47

 

선교학 ; 기독교 선교 이해 J.허버트 케인 저 신서균역

제 7 장

방법적인 명령

 

기독교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복음 전도자이다.

그의 주된 임무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쳐 모든 만족을 제자로 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의 영혼들을 구한 선교사는 절박할 정도로 빈궁에 처한 그의 형제들이나 자매들에게 ‘평안히 가라 배부르게 하라“(약2;16)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연민으로 그는 육신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그에게 주어야 했다.

그래서 선교사는 병원들과 학교들을 열고 그로 인해 전인류에 대한 사역의 길을 닦았다.

 

1, 복음 선교

복음의 전도는 모든 선교의 핵심에 속해 있다.

복음 전도를 포함하지 않는 일은 더 이상 선교 사역이 아니다.

“ 복음의 중심은 바로 세상에 대한 선교에 있다.

교회의 주된 임무는 세상의 길모퉁이에 서서 ‘ 복된 소식이 임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 전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복음 전도는 기독교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읽어버린 세상에 전하는 그런 활동이다.

복음 전도의 개념을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전제가 있는데 이는 모두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다

1) 모든 인간은 멸망하게 되어 있으므로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

2) 구원에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이다.

3) 구원 받기위해 인간은 복음을 이해하고 믿어야 한다.

복음 전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님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 보다는 목적에 대한 수단이다.

선교지에서 복음 전도는 이중의 목적을 갖는다.

직접적인 목적은 개개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하게 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강력하게 영적인 토착 교회의 설립이다.

이 두 개념들 - 개인의 회심과 교회의 성장은 오늘날 공격을 당하고 있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리스도의 사절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세상의 모든 지역에 토착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복음 전도가 교회의 주요 과제라면 교회는 복음 전도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교회와 세상과 차이가 있다면 교회는 연약하고 분리되어 있으며 신실하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골1;18)이며 신부이다(엡5;32).

교회의 명백한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하나님의 충만이다(엡1;23).

오늘날 우리는 복음 전도를 세 가지로 종류로 말한다.

1. 참여적 전도.

2. 선포적 전도

3. 설득적 복음 전도로 말이다.

 

참여적 복음 전도를 강조하고 선포적 복음 전도를 거절하거나 무시해버리는 자유자들이 있다.다른 한편에는 선포적 복음 전도는 믿으나 참여적 복음 전도의 유효성을 거절하고 설득적 복음 전도에는 꽁무니를 배는 보수주의자들이 있다.

참여적 복음 전도는 기독교 교회가 공동체에서 단순히 참여함으로써 주는 비언어적 증거를 언급한다. 에큐메니칼 단체에서 점점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종류의 복음 전도이다.

 

두 번째 종류의 복음 전도는 선포적 전도인 것이다.

이것은 신약에서 아주 빈번하게 발견된다. 기독교는 그 본질상 선교적이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믿음을 실행할 수 있기 전에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에 친해져야 한다.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처럼 설교와 연관이 있는 복음 전도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설교하셨고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도 설교 하였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들의 교리로 성전을 더럽힌다고 고소하여 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것을 금지하였다(행4;18).

설교자 중에서 위대한 바울 사도도 개종하자마자 다메섹의 회당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고 한 세대 후에 바울 사도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행28;31)

고린도의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고전1;17) 그리고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네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고전9;16)하였다.

 

세 번째는 설득적 복음 전도이다.

설득적 복음 전도는 인간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이끌려고 하는 점에서 선포적 복음 전도보다 한 걸음 앞서 간다.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음을 인해 안타가워 하며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려 하였다.

설득은 너무 멀리까지 가면 쉽게 강요가 될 수 있다.

복음과 자선이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현장에서는 특히 사실이다.

선교사는 반듯이 설득해야지 강요해서는 안된다.

 

 

2, 의료 선교

동방 종교와 비교해 볼 대 기독교는 세계가 승인한 종교이다.

기독교는 다가올 미래의 삶뿐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고치시기 전파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다니시며 ‘네가 온전하느냐’고 하였다. 인간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고치시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선교사들은 선교 현지에서 진료소, 약국, 요양소, 안식처, 병원, 그리고 몇몇 경우에는 의료 학교 등을 포함하는 의료 선교를 활발하게 촉진 시켰다.

사실 현대의 과학적인 의약과 시술은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제3세계에 도입되었다

 

의료 선교의 장점들

1) 의료 선교는 육신의 치료를 가져온다.

동방 종교들과는 달리 기독교는 육신에 중요성을 많이 둔다.

구원은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까지도 포함된다.

오늘날 선교지에서는 고쳐 달라고 부르짖는 구제받지 못한 엄청난 양의 병과 고통이 있다.

교회는 이러한 일에 귀를 막고 있을 수 없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선교사는 자기보다 먼저 계셨던 주님처럼 육신의 치유에 절대적인 관심을 갖는다.

육신의 치유는 단지 하나의 목적 - 영혼의 치유 -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것은 본질적으로 선한 일이다.

선교 사역의 중요한 부분인 치유 사역은 바울이 디도에게 준 지침들이 들어 있다.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디도서3;8).

 

2) 의료 선교는 편견을 없애고 선의를 만들어낸다.

1880년대에 개척 선교사들은 한국으로부터 추방될 중대한 위험에 처해있었다,

1884년에 알렌(H.N.Allen) 박사가 황실 가족 중 한 사람의 상처를 성공적으로 치료했을 때 하룻밤 사이에 상황이 바뀌었다.

 

3) 의료 선교는 그리스도인의 연민을 나타낸다.

선교사 - 의사는 그만이 치료할 수 있는 병과 고통을 마주할 때마다 예수님과 똑같이 느낀다.

그의 마음은 그 불행한 병자들에게 향하여 그들에게 연민을 베풀고 싶어한다.

그의 유일한 보상은 그의 환자들과 지속적인 감사이다.

 

4) 의료 선교는 종종 개종으로 이끈다.

대부분의 선교 병원들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와의 첫 번째 접촉이 그들이 선교 병원에 머무는 동안에 이루어졌다고

증언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선교사뿐 아니라 동포인 직원들의 손으로부터 받은 사랑스런 보살핌의 결과 때문에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사람들은 건강할 때보다는 아플 때 종교에 대해 호의적으로 마음을 내놓는 것 같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병원에서 1주일은 생과사 시간과 영원, 천국과 지옥이라는 큰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5)의료 선교는 교회에 명성을 더해준다.

제3세계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같은 도시에 선교사 병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의 약간의 명성 때문에 기독교 교회가 헤쳐 나갈 것이다. 보통 선교사 - 의사는 지역 사회의 시공무원 지방 귀족, 부유한 시민들, 다른 귀족들과 서로 말을 건넬 정도의 친분을 갖고 있다.

자연히 교회와 그의 관계는 교회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더 많은 역할을 한다.

 

의료 선교의 문제점들

1) 인 원

의료 사역의 중심에 잇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외국인이고 동포이고 간에 높은 자격을 갖춘 인원을 필요로 한다

둘 다 얻기 어려우며 보유하기도 어렵다.

선교사 - 의사들을 모집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 재 정 3) 행 정 4) 경 쟁 5) 무 지 6) 전 문 화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선교현장에서 벌어지고 선교 단체나 파송되어 있는 선교사 - 의사, 간호사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P398-402참조)

 

의료 선교의 단점들

1) 대도시에 집중하는 경향

19세기 의료선교 전략은 대도시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의료 보조원들’을 그들을 필요로 하는 시골 지역으로 보냈다.

 

2) 중류 및 상류 계층을 돌보려는 경향

선교회의 의료 시설은 도시에 집중되었고 도시에는 있는 선교회 병원이 좋은 시설로서 자연히 중류 및 상류 계층에 사람에게 혜택이 주어져 하류 계층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3)충분하게 자격을 갖춘 의사들을 훈련시키지 못함

선교지의 낮은 교육 수준이 높은 학력의 의사나 간호사들을 찾기가 어렵다.

오늘날까지 많은 선교회의 병원들이 오직 서양의 의사들에 의해서만 운영되어 왔는데 이는 심각한 단점으로 간주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4)효과적인 후속 사역의 종사에 실패함

선교회 병원에서 복음을 들었던 많은 환자들이 병원 문을 나가서 교회가 없는 마을과 도시로 돌아가 새로이 발견한 믿음을 양육 받지 못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믿음을 버리게 된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에 그리스도를 고백한 환자들을 위한 잘 짜여진 후속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다

 

5)현지 교회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에 협력하지 못함

교회는 선교회 병원을 오직 선교 사업에 속하는 것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선교회 병원은 현지 교회의 관심이나 통제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병원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유일한 접촉은 일요일 아침에 병원 직원이 교회에 출석할 때이거나 목사가 충수염에 걸릴 때인 것이다,

 

의료 선교의 현대의 경향

 

1) 정부의 제한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의사는 영어로 된 의사 시험을 치른다.

그러나 미국 의사들은 선교사역지에서 자국어로 의사 시험 때문에 언어의 문제가 심각하다,

자국어로 된 평범한 기술적인 용어들을 배우는 것은 어마어마한 작업니다.

 

2) 의료 시설이 증가함에 따라 선교회 병원들은 숫자와 효율성에서 감소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에 문을 연 새로운 선교회 병원은 거의 없다,

도 몇몇 병원들은 문을 닫았고 다른 병원들은 정부에 넘겨졌다.

 

3) 시골 지역에서 일하는 이동 진료소에 더 많은 강조가 주어지고 있다.

선교회들은 도시에서 경쟁에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완전히 병원 문을 닫는 대신 시골 지역으로 전환한다.

선교회들은 비싸게 지어진 병원들보다 이동 진료소의 사용을 더 좋아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현대의 의료권을 가난한 자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다.

 

4) 예방 의학에 중요성이 더 주어지고 있다.

예방 의학의 중요성을 알고 질병을 감소시키기 위해 고안된 보건 업무들을 제공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선교회 병원이나 심지어 이동 진료소가 이러한 노선을 따라 할 수 있는 일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말의 노력은 이루어지고 있다,

 

5) 단기간의 인원들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본국의 의사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빠른 교통수단이 주어졌다.

많은 환자들은 본국의 전문의 의사들이 내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수술하는 일이 이루어졌다.

선교회에서도 더 좋은 의료인들의 혜택을 환자들에게 줄 수 있디.

 

3. 교육 선교

육은 항상 선교 운동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가르침은 대중 사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였다.

현대의 과학적인 교육은 선교사들에 의해서 제3세계에 도입되었다.

인도의 미션 스쿨은 정부의 보조를 받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보조를 받지 못했다.

인도의 학교들은 명성 있는 기관들이어서 가장 훌륭한 학생들이 모여 들었다.

대체적으로 미션 스쿨은 좋은 명성을 누렸으며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학생들을 모았다고 하는 말이 옳다. 여기에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1) 학문적 수준이 높고 훈련법이 좋았다.

2)부모들은 인격 훈련에 강조를 두는 것에 대해 높게 평가하였다.

3)서양의 교육, 특히 영어는 좋은 정부의 지위와 해외여행의 수단으로서 많이 요구되었다.

교육에 있어서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대두 되었고 선교회는 독자적으로든지 연합으로 하든지 학교를 세우며 선교의 장을 넓혀 갔다.

선교사 자녀들이 발전한 나라에서는 공립학교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교육 선교에 있어서의 문제점들

서양에서도 교회와 관련이 있는 학교는 재정적인 지원의 결핍으로 곤란해지고 있다.

선교 현장에서의 문제는 더 크다.

오늘날에도 높은 수준의 있는 자격을 갖춘 그리스도인 교사들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아시아의 어떤 대학은 교사들 60%만이 그리스도인들이다.

다른 교사들은 힌두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혹은 불가지론자들이다.

이것은 자연히 학교의 기독교적 추진력을 손상시킨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선교사, 목사들, 혹은 전도자들이 교회와 학교에 사이에서 그들의 시간과 힘을 나누어 주면서 이중의 의무를 수행한다.

기독교 학생들의 반사회적 시위에 가담하므로 정부로부터 미션스쿨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

 

교육 선교의 최근 경향들

미션 스쿨은 점점 세속화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인격 발달보다는 국가 건설에 더 관심이 많고, 개인적인 개종보다는 사회적인 진보에 더 헌신적이며, 구원보다는 인간화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러한 학교들은 명목상으로는만 기독교적이다.

미션 스쿨은 점점 국영화되어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이란이며 1939년에 이곳에 있는 모든 미션 스쿨이 몰수되었다. 이집트에서도 똑 같은 과정을 겪었다.

미션 스쿨의 국영화는 완전한 비극이 아니다.

겉으로는 불행하게 보이지만 행복일 수 있다.

그것은 엄청난 재정적인 부담으로부터 선교회를 구제해주며 번거로운 행정적인 잡일로부터 선교사들을 해방시키며 복음 전도 및 교회의 성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많은 일들을 위해 그들을 자유롭게 해준다.

 

신학 교육

두 세대 전에 존 모트(John Mott)는 선교 운동의 가장 큰 약점은 그 나라 교회를 위하여 잘 훈련된 지도자들을 길러내자 못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일본, 한국, 그리고 대만과 같은 오직 세 나라에만 어느 정도 적당한 수치의 훈련받은 목회자들이 있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 곳에서도 10개에서 20개의 회중을 책임 맡고 있는 한 명의 목회자를 발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신학 교육의 문제점들

신학 교육이 형편없이 무시되어 온 사실은 보편적으로 인식되어 있다.

대체로 신학교들은 작고 시설이 보잘 것 없으며 직원도 부족한 교회의 ‘의붓자식들’이다.

 

1) 증식

한국에서는 백 개가 넘는 성경 학교와 신학교들이 있다.

대만에서는 19개의 새로운 학교들이 1951-1961년 사이에 설립되었다.

각 선교회에서는 자체의 성경 학교를 보유할 것을 고집한다.

어떤 경우에는 성경 학교들이 개인 선교사에 의해서 설립된다.

가장 크고 강한 신학교는 인도, 필리핀, 일본에 발전한 나라에 연합 학교들이다.

그러나 이 학교들은 그들의 신학적 방향에서 자유화하는 경향이 있다.

 

2)작은 등록자수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넘 많은 것이 문제다.

 

3)부족한 도서관 시설

작은 신학교는 도서관이라고 하는 방도 없지만 전통이 있는 신학교는 큰 도서관을 소유하고 있다.

 

4)자격을 갖춘 교사들의 부족

선교사들 중 많은 수가 최근 몇 년까지만 해도 성경 대학 졸업생들뿐이다.

미국에서는 성경과 신학에 더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들을 더 많이 배출해내고 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선교 현장에서 가르치라고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선교 현장으로 가는 것은 사람의 시간과 재능의 ‘낭비’이다.

혹은 우리의 많은 신학교 졸업생들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5) 배치

몇 가지 질문들이 이 문제의 토론과 관계가 있다.

1) 이러한 모든 교육을 받은 신학교 졸업생들이 그가 필요로 하는 곳에 기꺼이 가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대도시의 큰 교회를 갖기를 고집할 것인가?

2) 그를 초빙한 교회는 그의 훈련에 상응하는 월급을 그에게 지불할 수 있는가?

3) 그는 경험은 더 많고 학식은 더 적은 선배 목사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질까?

이곳에서 3년이나 4년 동안 교육을 받았지만 20년이나 30년의 경험을 가진 신실한 늙은 목사들이 좀더 젊지만 더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맞아들이기를 꺼린다.

자연히 그들은 노장 목사들에게 위협적인 자세를 취한다.

 

 

4, 인도주의적 사역

보통 미국인은 선교사에 대해 매우 왜곡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선교사는 그의 유일한 소망이 지옥의 저주로부터 이방의 영혼들을 구하는 것인 종교적 열심당원으로 묘사된다.

확실히 초기 선교사들은 특별한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단독으로 큰 용기를 가지고 그들 시대의 사회적인 악들

인도에서의 - 어린이 결혼, 과부들을 희생 제물로 드리기, 성전에서 간음, 천민 제도.

중국에서는 - 아편무역, 도박, 전족, 그리고 유아 살해.

아프리카에서는 - 노예무역, 주류무역 그리고 쌍둥이 죽이기 -를 공격하였다.

세계의 모든 지역에 그들은 학교, 병원, 의과 대학, 진료소, 고아원, 나병원을 열었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국민에 의해 버림을 받은 사회의 쓰레기 같은 사람들에게 원조와 음식물을 주었다. 선교사들은 그들의 언어를 문자화 하고 성경을 번역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읽을 수 있도록 가르쳤다. 선교사들은 그들의 일을 행함에 있어 무관심, 의심, 적대감, 박해 등을 받고 감금을 당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그들의 집은 강탈을 당했고 그들의 건물은 불탓으며, 그들의 교회는 신성 모독을 당했고, 그들의 생명은 위험을 받았다.

수천 명이 건강이 상해 고국으로 돌아갔다.

수백 명이 열대의 질병들 때문에 너무 일찍 죽었다,

수백 명이 순교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사양함이 없이 후회 없이 그리고 보상 없이 견디었다.

 

선교사들의 인도주의 사역 가운데 의료분야에서 앞선다.

피터 파커(Peter Parker) 박사는 중국의 첫 번째 의료 선교사였다.

댄 브래들리(Dan Bradley) 박사는 1836년 태국에서 천연두 백신을 소개하는 영예를 가졌다.

제임스 맥킨(James Mckean) 박사는 1890년대에 송아지로부터 백신을 개발하여 키니네를 제조하였다. 태국의 천연두와 말라리아 백신으로 백선들을 구하자 태국 국왕은 그에게 왕족의 지위를 수여하였다.

넬슨 벨(Nelson Bell) 박사는 중국에서 수년 동안 가장 큰 선교회 병원의 책임을 맡았다.

 

선교사들의 인도주의 사역 가운데 교육 분야.

제3세계 여성들이 오늘날 누리는 해방은 선구적인 선교사들의 교육사역 덕택이다.

현대 과학 교육도 선교사들에 의해서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도입되었다.

미션 스쿨이 앞장섰던 것은 바로 여성의 교육이었다.

 

선교사들의 인도주의 사역 가운데 경제 분야.

세계 모든 지역에 있는 선교사들은 농업과 산업 선교에 참여하였다.

1846년 스위스 바젤 선교회는 인도에 산업학교를 세워 젊은이들에게 토목, 직조, 자물쇠 제작, 제책, 인쇄 등 유용한 다른 일들을 가르쳤다.

선교사들의 교육이 농업분야에서 더 나아가 공산품 제조 수출로 이어지는 결실을 인도, 아프리카, 중국, 등에서 나타났다.

1903년에는 영국의 국교 선교애서는 우간다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선교사들의 목표는 그들에게 무상 원조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돕는 것을 도와주며 단순히 개인의 운명을 개선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불행, 가난, 기아를 가져오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구조와 제도들에도 관심을 가졌다.

 

인도주의적 사역의 또 다른 영역은 난민들 사이에서의 구제 사역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레 이 지구 위에는 전쟁이든 내전이든 수많은 난민들이 있어왔다.

1930년대 후반에 중일전쟁으로 발생한 중국 본토에서의 수백만 명의 난민,

1947년에 인도의 분리로 생긴 5백만의 난민,

1971년 방글라데시에서 인도로 도피한 1천만의 난민.

아프리카에서는 수단 남부, 부룬디, 비아프라, 이디오피아, 앙골라, 모잠비크 -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선교사들과 선교회 단체들이 돕고 있다.

위급한 경우 그들의 정상적인 활동들을 중지하고 구제와 회복에 그들의 모든 시간을 쏟는다.

선교사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똑같은 내용이다.

그들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신“ 그들의 주인의 발자취를 계속해서 따랐다(행10;38) 좋은 시기든 나쁜 시기든 그들은 항상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때에 고치고 돕고 공급하고 구해 주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 끝 ----

 

-- 내 생각 --

우리나리의 선교 역사도 그렇다.

알렌 선교사의 왕족 치료와 우리 지역에서 가까운 전주예수 병원의 역사는 한 소녀의 부어오른 배에서 말로 할 수 없는 회충이 나와서 시작한 전주예수병원과 나병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가까운 애양원병원등이다.

숭실대학을 비롯한 많은 기독교 대학교와 많은 고등학교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꿈을 갖게 만들었는가. 선교사들이 풍토병으로 또는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하고 돌아가신 노고가 어찌 다 말로 기록할 수 있겠는가. 나를 살리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그분들이기에 나 또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어 하나님의 아들이 된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되고 국력이 신장되어 많은 선교회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아메리카에 활발한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다.

우리나라 각 선교단체에서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고 자비량으로 가는 개인 선교사는 그리 많지 않다.

2002년에 광주에서 시작한 선교회에서 교육을 한 달 이상 받을 기회가 있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소속인데 그 때 교육을 받으며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선교 사역지와 미종족을 알게 되었고 아직도 많은 민족이 복음을 접하지 못한 민족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준비된 선교사와 보내는 선교사가 많은 민족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