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이야기

나가시기 4탄 이야기

웅대한돌산 2009. 11. 26. 10:10

안녕하세요.

일본여행 4탄 '데지마와 하멜'편입니다.

참, 사진은 천천히 보낼께요.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 임현철 드림.

 

일본 나가사키시의 부채형 인공섬 '데지마'.

 

<하멜표류기>는 임금받기 위한 수단?
[범선타고 일본여행 4] 데지마 & 하멜

 

흔히 역사를 ‘거울’이라 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낼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역사 탐방을 시도하는 것도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4월 24일, 하멜 항로에 따른 항해 끝에 나가사키 항에 상륙합니다. 나가사키 항은 일본의 쇄국시대에도 유일한 무역상대국이었던 네덜란드인의 거류지로 17세기에 조성된 ‘데지마’가 있습니다.

 

데지마는 나가사키 남쪽에 약 1만 3천㎡ 규모로 조성된 부채형 인공섬으로 무역의 중심지였던 곳입니다. 1904년 매립으로 소실되어 현재 ‘데지마 복원정비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재현된 데지마.

 

‘데지마’ - 7세기에 무역거래의 중심지

 

이곳에는 포르투갈을 비롯하여 영국, 네덜란드 등과의 무역 상황과 네덜란드 상관에서의 식생활 등 쇄국 당시의 문화가 모형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하멜이 상륙했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1633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상선은 하멜(22세) 일행을 태우고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제주도에 표류하게 됩니다. 이후 13년간 조선에 머무르며 벼슬을 받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던 하멜 일행은 청나라 사신 일과 전염병과 기근 등으로 인해 여수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배가 빈번히 출몰하던 지역이었던 여수는 일본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수군사령부인 전라좌수영이 설치되었던 곳입니다. 여수에서 장사로 돈을 모은 하멜 일행은 1666년 9월 4일 어민들의 도움을 받아 8명이 탈출, 12일 만에 나가사키에 도착합니다. 이때 나가사키의 데지마 상관은 아래의 보고를 접합니다.

 

“이상한 차림의 유럽인 8명이 낯선 배를 타고 보또 섬에 상륙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즉시 파견된 일본수군들에 의해 그들의 신병이 인수됐다. 그 사람들을 실은 배가 나가사키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라좌수영 본영이었던 여수의 '진남관'

 

막부, 하멜 상륙 계기로 외교 분쟁 제기

 

그리고 하멜 일행은 나가가키 부교의 심문을 받습니다. 그 내용은 상선의 규모ㆍ항해 목적ㆍ난파 경위와 조선에서의 생활ㆍ군사정보ㆍ경제ㆍ풍습 등과 조선의 대외 관계 및 탈출경위ㆍ조선의 입장에 대한 내용 등 54개항에 이르렀다 합니다. 이는 에도 막부에 보고되었고, 막부는 하멜 일행을 데지마에 1년 더 억류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막부의 억류 이유에 대해 <하멜표류기>에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후 에도 막부는 조선에 외교문서를 보냅니다. 막부의 외교문서집인 ‘통항일람’에는 탈출자들이 기독교인지 아닌지를 조선에 문의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합니다. 그러나 한국 측 자료 ‘현종 7년과 8년의 실록’에는 이와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하멜 일행의 억류 사실을 놓고 막부 측이 10달간이나 집요하게 조선 조정에게 공격해온 사실이 있다. 막부 측은 하멜 일행을 억류시켜 놓은 채 이 사실을 조-일간의 외교 분쟁으로 비화시켰던 것이다.”

 

에도 막부는 임진왜란 이후 왜관으로 한정됐던 무역량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하멜 일행의 심문 내용을 이용한 것입니다. 즉, 막부는 하멜 일행의 탈출을 이용해 조선과의 무역량을 늘리고자 했습니다. 이는 네덜란드인으로 조선에 귀화한 박연의 경우 등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갑니다.

 

17세기 나가사키를 드나 들었던 상선 그림.

 

하멜 <하멜표류기>로 밀린 급여 받다

 

조선과의 외교전이 실패하자 막부는 1668년 하멜 일행의 출항을 허락합니다. 네덜란드로 돌아온 이들은 밀린 임금을 지급 받고자 상선의 기록을 맡았던 하멜이 조선에서의 억류생활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여 동인도 회사에 제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하멜 일행은 14년여의 급여를 지불받습니다.

 

하멜의 보고서는 시중으로 유출되어 소책자로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켰다 합니다. 이후 네덜란드는 조선과의 직교역을 추진하고, ‘코레아호’라는 대형 상선까지 건조하였습니다. 하지만 데지마 봉쇄령을 무기로 삼은 막부의 방해로 없던 일이 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코레아 호’의 조선 상륙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하멜의 조선 탈출은 조선과 일본의 경제를 둘러싼 외교전이 숨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실리 외교가 숨어 있는 것이지요. 일본 국보인 데지마에는 하멜 관련 기록 등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은 모두 역사의 대상이지만 모든 사실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

 

17세기 당시의 상거래

 

데지마 안내문에 한국어 설명이 쓰이기를…

 

역사의 금물, 가정 하나 해봅시다. 17세기에 직교역이 성사되었더라면 조선의 근대화가 빨라졌을 테고, 그리고….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현재 네덜란드의 ‘코레아 호’ 대신 하멜 항로를 따라 항해한 대한민국의 ‘코리아나 호’가 나가사키 데지마에 닿을 내렸습니다. 나가사키와 코리아나호는 범선축제로 인해 상호교류를 추진하는 중입니다.

 

미래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 중 여수가 하멜공원을 조성하는 것처럼 데지마에도 하멜 기록이 추가되겠지요. 그러면 국제 연계관광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일어ㆍ영어ㆍ한국어가 함께 쓰여 있는 데지마의 안내문이 들쑥날쑥하다는 사실입니다. 한글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리고 설명에는 한국어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나가사키시 관계자는 "정비계획 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어찌됐건, 나를 깊이 파면 그 뿌리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는 ‘자존감’이 생각나는 건,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 때문일까?

설명에는 한국어가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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